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레파토리가

송창식, 최성수, 최백호에서 딱 멈춰버렸다.

워낙 그들의 노래정서를 좋아하다보니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그들 이 후에 나오는 가수들의 신곡들은 선율은 고사하고

가사가 영 유치해 보인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중 최성수는 가사로만 보면 슬픈 이별을 가장 많이 해 본 사람처럼

노래가 ,뭐랄까? 하나같이 달콤하면서도 처연하다.

청승맞다고 하기에는 노래 속에 뭔가 중독성이 있는 단 맛이 들어있다.

즐겨본 사람이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사랑의 달콤함, 뭐 그런 것일까?

그림 읽어 주는 남자가 그림을 설명 할 때처럼,

최성수는 담담하게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주변부터 찬찬히 이별의 슬픔을 설명한다.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그의 마법에 걸려 처연한 무드에 젖어들게 된다.

마음이 울적해졌을 때 가끔씩 부르곤 하는 그의 노래 중에 ‘장미의 눈물’이 있다.

“아 사랑이 무어냐? 눈물이잖아?/ 하늘보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구나 !

술과 장미에 젖어도, 마음 더욱 애~ 달~ 퍼~“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노래인데, 지난세월을 돌이켜 볼 때

술과 장미에 제대로 젖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다소 생뚱맞기는 하지만,

술과 장미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의 영원한 로망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노라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지금은 홀로된 훈남의 포스가 터져 나오니, 아 이런! 이건 또 뭐지?

최광선 작가는 자타가 공인 하는 장미의 연인이다.

졸저 “그림 읽어주는 남자...”에도 ‘푸른 시대’라는 제목의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소개하였다.

“그림 속의 푸르게 빛나는 장미는

이 한겨울 깊은 산속 외딴집 창가에서

온산과 집 앞개울의 물에 두루 쌓인 흰 눈과 더불어

달빛의 세례를 흠뻑 받아 잠을 설치고 있는 중이다.

창밖의 겨울의 냉기를 미쳐 느낄 사이도 없이,

쌓인 눈에 반사된 푸른 달빛에 매혹된 장미는

뜻모를 설레임에 달뜬 가슴을 온몸으로 푸르게 푸르게 뿜어내고 있다.“- 후략-




그런데 지금 소개하려는 작품 “휴식시간”은 같은 색조이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장미 다발들은 드디어 내 뿜는 것을 멈추었다.

푸른빛을 내면으로 갈무리 한 채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일까?

꽃 하나하나에 작가의 따스한 눈길이 머물러 있다.

로마네스크풍의 유리 화병은 같은 양식의 아름다운 유리 접시와 함께 ,

쌍을 이루어 장미다발들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그리고 그 화병을 받쳐주는 테이블과 왼쪽에 치우쳐 깔끔하게 내리그은 수선은

몬드리안의 황금 면 분할이다.

나는 이런 그림이 좋다. 어설픈 욕망을 배설하듯 뿜어대는 여인보다는

서정주의 시 “국화옆에서” 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내 누님 같이 생긴 꽃”,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있는 여인의 그 차분함이 좋다.

휴식시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짙은 네이비톤이 배경을 뒤덮고 있다.

꽃과 화병의 사실적 묘사와는 달리 작가는 굳이 거친 귀얄 자욱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마치 자!자!하고 화가가 강제로 짙은 코발트의 커텐을 쳐내려 가는 것처럼

꽃들의 휴식을 독려하고 있는 것 같다.

남색의 커텐들 속에 간간히 끊어질듯 이어지는 오렌지색의 가는 선들은

자칫 지나치게 차가와 보이는 분위기를 포근하게 바꾸어 주는 일종의 반전 코드다.

결론적으로 이 그림은 최 화백의 작품 중에서 수작에 속한다.

그분의 작품 중에서 이렇게 진한 푸른색 배경의 장미는 드믈다.

그리고 화병에 제대로 힘이 들어간 그림도 아주 흔치 않다.

마음이 번잡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 곁에두고 차분히 응시하고 싶은 작품이다.


Posted by 포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