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키의 그림은 다양한 변천을 거쳐 크게 4가지의 흐름으로 정립된다.

그 중 하나는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 작가가 프랑스에 처음 건너갈 당시에 이미 프랑스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구성적 기법을 이용한 신입체주의적 정물화 계통이고 여기에 인물이 접목된 한 갈래가 떨어져나간 것까지 합쳐 첫 번째 흐름을 이룬다.

낭만적이며 여성적인 감성이 풍부하며 부드럽고 비교적 구상적이다.

두 번째 흐름은 2000대 초반에 확립된 것으로 흔히 컴퍼지션이라는 테마로 그려진 추상에 근접한 일련의 작업들이다.

일반적으로 캔버스 대신 목판위에 크레용과 파스텔을 주재료로 하여 그렸고 때로는 유화물감과 아크릴 물감은 물론 미술용 시멘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의 혼합물이 실험되었다.

가장 파격적인 형태와 기막히게 화려한 색깔이 특징인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이전의 밝고 화려하던 색의 세계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흑백과 회색의 차가운 무채색 이미지들이 전위적이고 세련된 선의 세계를 드러내면서 무더기로 출현하기 시작한다.

이 그림은 그중 컴퍼지션 계열의 대표작으로 특이하게도 캔버스의 뒷면에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화가의 전 작품을 통 털어 뒤집어 그린 그림은 이것 한 점이 유일하다.

또한 이 그림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뒷얘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찌 고호의 이야기만 흥미로울까?

사십대 중반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연 홀몸으로 파리로 떠나 갖은 고난끝에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대상에 빛나는 성공한 여류화가의 대표작에 얽힌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작가는 이 그림을 파리의 한 유명한 전시회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그렸다고 한다. 그때까지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인이 꽤 실력을 갖춘 정도로 파리의 화단에서 나름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던 작가는 도불한지도 어느 듯 5년이 넘어가고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던지 ,파리화단에서 성공하던지 둘 중하나를 선택해야 만하는 나름 절박한 시기였다고 한다.

마침 그 전시회에서는 화가들에게 장소와 원하는 화구, 재료일체를 제공하고, 주최 측이 홍보를 책임 질 테니 관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진검 승부를 펼칠 화가를 공개적으로 모집하였는데 막상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프랑스의 화가들로서는 이일이 일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낯선 작업임은 물론, 섯불리 지원했다가 작품이 잘못되면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의 그림기법을 모조리 드러내는 것은 물론 동료작가들에게 공개적으로 모든 과정을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기도 용기지만 작업자체가 일종의 큰 도박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실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이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런 도박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아무도 지원자가 없음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힘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 날 그 자리에 실력과 용기를 갖추고도 절박한 환경에 처해있기도 하였던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한미키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어차피 마지막이라 생각했어요.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당시를 회상하는 한미키 화백의 육성고백이다. "오직 이 자리에서 자신을 알리지 못하면 실패라는 누명을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죽도록 그림을 그려나 보자 ! " 그렇게 2박3일간 전시장 한 구석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낯선 눈길을 받으며 작가는 모든 것을 걸고 그림에 몰두한다. “창피고 뭐고 몰랐다니깐, 오직 성공해야한다는 그 생각 밖에는... 지금도 그때 생각만하면 어휴.... ” 그렇게 화가는 일평생 다시는 되풀이 못 할 그림과의 사투에 돌입한 것이다.

일단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당시로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일단 100호짜리 대형 캔버스를 뒤집어 그리기로 하였다. 캔버스를 뒤집자 곧이어 나무테두리와 열십자 모양의 나무격자가 드러났다. 그 기이한 광경은 대번에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지?’ 하는 웅성거림이 들려오자, 화가의 등 뒤로 작가로서의 본능이 용솟음치며 소름이 끼치는 듯한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물론 아무생각이 없는 채로 무작정 달려든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새로 실험 중이던 깨진 도자기 파편이미지들을 이용한 컴퍼지션의 아름다운 선과 화려한 색상들을 표현하는 데는 목판이 제격인데, 막상 뒤집어 놓고 보니, 캔버스의 뒷면은 목판과 캔버스가 모두 갖춰져 있는데다가 나무격자들 때문에 화면이 자연스럽게 네 칸으로 분리되는 효과마저 있어서 이 두 재료를 다루는데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던 작가로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과감하고 대담해야 했다. 화가는 크레용과 아크릴 시멘트까지 동원하여 다양한 재료를 마음대로 쓰면서 낯선 이국땅에서 겪었던 설움과 잡다한 스트레스를 미친 듯 풀어내면서 마음이 오히려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첫째 날이 지났다.

그런데 다음 날 작업장에 도착해보니 한미키의 그림 쇼는 이미 전시장의 대 화젯거리가 되어있었다.

(이 역사적인 그림 쇼의 한 장면은 당시의 미술잡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스냅 한컷 사진1 )


덕분에 둘째 날은 한층 마음이 차분해졌다. 원하는 것을 얻은 이상 화가의 손길은 더욱 단호하고 정교해졌다. 전날의 불안과 광기의 흔적은 화가의 차분한 손길에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가면서 眞 馥 美 古典 吉 成 德과 같은 평소 마음에만 품었던 한자들도 새삼스럽게 떠올라 자연스럽게 화폭을 채워갔다. 그림이 점차 형태를 띄어가자 처음에는 일시적 만용으로만 보였던 뒤집힌 캔버스의 선택은 밭 전 자형(田)의 나무틀과 천의 질감의 확연한 대비효과가 일종의 입체적조형물이 되어, 화려하게 그려진 도자기의 파편들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묘한 시각적 쾌감을 주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더욱 더 주변의 관객들을 흥분시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반응들은 다시 화가를 자극하는 일종의 흥분과 교감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시도도 결과도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희대의 걸작은 절박한 환경을 타개하려는 처절한 의지에서부터 화려하게 꽃을 피워나갔던 것이다. 완성된 작품은 대번에 화단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고 훗날 그랑팔레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받을 때에도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 심사위원들은 당시의 그 작품을 거론하면서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방하였지만 화가는 끝내 이 작품을 후보작으로 제출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벌써 10년이 다된 지난 일이었고 작품을 마주 할 때마다 그 시절의 아픈 추억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에 두 번 다시는 보기 싫었다는 것이 화가의 변이었다.

작품은 그렇게 애증의 대상이 되어 화가의 파리 아틀리에 한 켠에서 최근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우연히 입수한 화가의 도록 속에서 어느 컬렉터의 눈에 띄게 됨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아래그림-작가의 도록에서 발췌)


Posted by 포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