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문덕수의 현대시 해설은

당시 대학입시준비로 여념이 없던 필자에게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입문서이자 현대시에 대한 총체적 평론 이었는데

명문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체적 내용은 이미 기억에서 가물가물 하지만 글의 요지는 대충 이랬던 것 같다.

'시인이 삶에서 건져낸 시어들이 하나하나가

모두다 나름대로의 의미와 예술성을 갗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잔잔한 감동이나 격정 그리고

삶이나 시대적 도전과의 맞주침에서 오는

희망과 절망 같은 순간의 감정들을 격하게 토해내거나

보드라운 시어로 싸서 세련되게 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승화시켰는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대시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고

이런 요소를 발견하고 그 감동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시문학 평론가의 올바른 자세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를 쓰고 비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시를 읽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이런 사실을 갈파하고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주변에 전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에 실린 그저 입시를 위해 뭐를 달달 외우려 했던

고3 수험생에게 처음부터 그 글이 그저 달달 외워햐 하는

시험지문에 불과한 글에서부터 필자의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명문으로

인식을 고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종로에 있던 EMI학원의 국어 단과반 최고 인기 강사였던

오 선생님(이름은 기억이 안난다.)의 고3을 위한 입시국어강의였다.

그의 강의는 입시를 넘어선 진정한 입시 강의였다.

그는 국어시간이 외우는 시간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고마운 분이다.

이해와 공감은 시를 읽고 감동받고 나아가 인생이 변하기 위하여

독자가 꼭 갗추어야 할 자세이자 소양이다.

이후 나는 영랑이나 소월보다는 청마 유치환과 이육사

그리고 윤동주와 조지훈의 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동을

고운 보자기에 싸서 지면에 펼쳐놓는 것은 물론 멋진 일이지만,

격동하는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행동하면서

고통과 비분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키거나

파란만장한 인생의 과정에서 길어낸 깊은 관조의 세계를 짧은 시어로 압축하여

그 핵심을 집어내는 진정한 문학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멋이란 이를테면 대의(大義)가 실려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흉내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질박함 뿐 아니라 엄격함이 있다.

그런데 그의 엄격함은 그의 신산한 인생과 치열한 작가정신의 산물이지

그저 생업으로 그림을 팔고저하는 장사치의 의식에서는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생명력이 깃들어있다.

컬렉터가 이것을 갈파하고 구별할 줄 모른다면 ,

그가 수집한 그림들은 그저 자기만의 만족에 불과한 것이지 ,

타인과 결코 소통되지 못할, 소위 영원한 자기 것이 되기가 쉽다.

그림에 이른바 대의(大義)가 실려 있는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인 작가중의 한분으로 추연근 화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그림여행은 철학이 있는 그림의 추연근화백의 대표작을

재조명해 보려고 한다.

Posted by 포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