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아트/낙찰후기2012. 2. 4. 08:11

오래전 내가 살던 읍내 변두리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 수를 셀 수 조차 없이 크고 작은 무덤들로 즐비한 묘역 한쪽에는 다 허물어져가는, 낮고 구멍이 숭숭 뚤린 초가지붕의 토담집이 하나 있었다.

또래 아이들은 그 속에 무엇이 있을지를 늘 궁금해 하였지만 그곳은 밝은 대낮에도 으시시한 두려움 때문에 언제나 좀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미확인지대(未確認地帶)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마을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이러한 두려움과과는 달리 알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에 끌려 우리는 상여행렬을 따라 공동묘지 근처까지 따라가곤 하였다.

울긋불긋한 꽃장식으로 요란한 상여, 귀신을 부르는 듯한 요령소리와 상두꾼들의 구슬픈 노래소리, 투명한 햇살 속에서도 세차게 펄럭이던 색색의 만장 뒤를 따라 저항할 수 없는 무형의 힘에 잡아끌리듯 줄지어 장례행렬을 좆아가던 아이들,

그때의 기억들은 이제 겨울 날의 여린 햇살처럼 퇴색한 빛으로, 의식의 한켠에 허물어진 작은 토담집처럼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우연히 접하게 된 중국의 화가 양쓰량,

나만의 느낌일까,
삶, 망향, 재가빈역호, 정박, 백운고비, 영가(靈駕) 등 그의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온 몸을 짓누르는 듯한 버거운 삶의 무게와 고뇌, 저승을 떠도는 듯한 영혼의 방황벽이 전율처럼 다가와 눈길을 떨치지 못하고 그 옛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에 떨며 상여행렬을 따라가던 어린 아이처럼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그림은 결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는 작품들이지만 반대로 기교에만 그치지 않는 구도자적인 치열한 삶의 자세와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내 생애 처음으로 구입하게 된 유화인 양쓰량의 작품 “교감(交感)” 역시 위와같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재가 되어버린 유년의 편린들, 그 두렵고도 기이한 호기심을 자극하던 수많은 기억의 저편에 존재하던 것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 어른들에게는
너무 오래되어 희미해져버린 상처와 같은 영혼의 그루터기 위에 다시금 생채기를 내며,
동토(凍土)에 몰아치는 세찬 바람과 흰 눈보라 속에서 한줄기 붉은 양광(陽光)과도 같이 피어 오르는 두 어린 영혼의 교감(交感),

언젠가는 그 기적과도 같이 작은 눈빛에 따뜻한 안식이 찾아오기를 염원해 본다.



출처[포털아트 - kijh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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