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문화.예술2019. 11. 25. 18:35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1억8천750만원(8천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김환기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그림으로,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말년 뉴욕시대에 완성했다.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다.

한국미술품 경매 최고가 1위부터 10위중 이중섭 '소'(9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 모두가 김환기로 채워졌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9. 2. 12. 18:11


기업 미술품 구입 손금한도 500만→1천만원 인상

정부, 미술품 소비 활성화를 위한 세제개선 시행

기업이 미술품을 구입하는 경우 손금산입 한도가 인상되고, 문화접대비 범위에 미술품 구입 비용이 추가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품 소비 활성화를 위해 이 같은 내용의 세제 개선안을 12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사무실·복도 등에 전시할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경우 손금산입 한도가 기존에는 작품 취득가액 기준 500만원 이하였던 것이 1천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됐다.




손금산입은 재무상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나,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는 비용이다.

이는 국내 미술시장 작품 거래 평균 가격이 해마다 상승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문화접대비 대상에 100만원 이하의 미술품 구입 비용을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종전에는 미술과 관련해 전시관람 입장권만 문화접대비로 인정됐으나, 미술 유통과 향유를 활성화하고 문화접대비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상 범위를 소액 미술품 구입 비용까지 확대했다.


문화접대비는 접대비 한도액을 초과한 기업이 문화접대비로 지출한 비용에 접대비 한도액의 20%까지 손금에 추가로 산입하는 제도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세제개선은 작년 4월 발표한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의 일환으로 기업의 미술품 구입을 촉진해 미술시장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7. 8. 3. 14:25

“겸재는…조선중화사상이 팽배하던 시기에 태어나 조선성리학을 전공한 사대부로…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요 대성자였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연구자인 최완수는 “민족적 자부심과 자존심을 잃지 않게 한 겸재야말로 마땅히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 꼽았다.
왜 이런 평을 내렸을까. 정선이 활약하던 시기, 조선은 한낱 오랑캐로 치부하던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통 주자학을 신봉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중국 문명의 전통이 조선에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조선중화주의라는 것이다.

겸재야말로 중국풍을 답습하던 전대 화가들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금강산과 한양 등 조선의 강산을 직접 답사한 뒤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경산수화의 새 영역을 개척한 위대한 화가라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조선중화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적’ ‘민족적’ 산수화풍을 창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위인전을 읽는 듯한 표현이 눈에 띈다. ‘마땅히 화성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 꼽고 있으니 말이다. 겸재는 그렇게 무오류의 화성일까.
너무 일방적인 극찬은 아닐까. 오히려 지나친 신봉이 오히려 겸재의 진정한 가치를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겸재가 밀려드는 그림 주문 때문에 대충대충 그린 작품이 적지않다면 어떨까. 아니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아들이나 혹은 제자까지 대필화가로 고용했다면 어떨까.

 

■겸재의 두 얼굴, 두 그림
과연 그런 그림들이 있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내연산삼용추도’. 내연산 삼용추긔 장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내연산삼용추도’. 이 역시 겸재의 작품이지만 다소 반복적이고 진부한 필법으로 내연산을 묘사했다. 

 

장진성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의 논문(‘정선의 그림 수요 대응 및 작화방식’, <동악미술사학> 제11호, 2011년)을 보면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우선 삼성미술관 리움의 ‘내연산삼용추도’와 국립중앙박물관의 ‘내연산삼용추도’를 비교해보라. 겸재는 58살이던 1733~35년 사이 경북 청하(포항) 현감을 지낸바 있다.

이 무렵 그 지역 명산인 내연산의 폭포를 몇 점 그렸다. 그런데 리움 소장 그림과 박물관 소장 그림의 질이 사뭇 다르다.

리움의 ‘내연산삼용추도’는 산 정상에서 폭포수가 떨어져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겸재 특유의 힘차면서도 율동적인 필획이 등장한다.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로 표현된 암산은 거대한 기세로 화면을 압도한다. 길게 쪼개지며 내려오는 절벽의 바위결을 시원하게 묘사하고 상중하 삼용추의 폭포길이를 급격하게 줄여가며 세찬 흐름을 표현했다. 화면 전체에 남아있는 빠른 붓질의 흔적은 겸재가 얼마나 붓을 빨리 움직여 묘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의 ‘내연산삼용추도’의 그림은 어쩐지 겸재 답지 않다.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필법으로 내연산을 묘사하고 있다. 폭포의 장관을 전혀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몇 번의 형식적인 붓질로 폭포에서 내려온 계곡물을 표현하고 있다. 암산과 소나무 역시 반복적인 형태와 조악한 필묵법을 보여준다.

비단 ‘내연산삼용추도’ 뿐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에는 겸재가 그린 ‘정양사’ 그림이 두 점 있는데 작품의 질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겸재 작품이 맞나
금강산 정양사는 유서깊은 절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금강산의 주인이라는 담무갈, 즉 법기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한 절이다. 담무갈은 1만2000명의 보살을 데리고 항상 금강산에서 설법하고 있다는 보살이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이란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정양사는 바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잘 그린 정선의 ‘정양사’를 보면 정양사 일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俯瞰視) 기법으로 포착했다. 마치 드론으로 사진을 찍는 듯한 느낌이다. 정양사 경내의 건축물과 주변의 토산, 원경의 암봉들이 안정된 구도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정양사’ 그림을 보세요.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미점(米点·붓을 옆으로 뉘여서 횡으로 찍는 점법. 송나라 화가 미불이 창안했다 해서 미점이라 한다)으로 토산을 그렸습니다. 경내 건축물은 또 어떻습니까. 잘 그린 앞의 그림에 견줘 매우 소략하게 그려져 있습니다.”(장진성 교수)


 


간송미술관 소장의 ‘정양사’ 두 작품. 장진성 교수는 “왼쪽 ‘정양사’는 정양사 일대의 경관을 하늘에서 조망한 부감시를 써서 포착한 작품이지만 오른쪽 ‘정양사’는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미점을 썼다”고 평했다.

 

이 두 작품 뿐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의 <신묘년풍악도첩> 중 ‘총석정’과 개인소장의 ‘총석정’ 또한 같은 겸재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차이가 난다.

간송미술관 소장 ‘총석정’은 묘사적이고 사실적인 화풍에서 속필을 사용한 표현주의적 화풍으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개인 소장의 ‘총석정’은 거칠고 빠른 붓질로 총석정과 주변 경관을 그렸다. 묘사적인 화풍에서 매너리즘화한 화풍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간송미술관의 ‘만폭동’과 왜관수도원 소장의 ‘만폭동’ 또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목멱산(남산)’ 또한 겸재의 그림 답지않은 조악한 그림이다.

개인소장의 ‘비로봉’ 역시 마찬가지다. 겸재 정선이 부여한 제목, 즉 ‘비로봉’ 글씨가 없었다면 그제 동네 뒷산을 그렸을 법한 평범한 그림이다. 일반적인 산수화 같다는 것이다. 특정적인 현장감과 사실성이 결여됐으므로 비로봉의 지형적인 사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한번에 쓸어내리듯 그리는 일필휘쇄
아니 ‘추앙받아야 할 화성(畵聖)’의 작품인데, 대충 그렸거나 심지어는 대필작가에 맡긴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개인소장의 ‘비로봉’. 겸재의 비사실적이고 태만한 필법의 전형적인 그림이라는 장진성 교수의 평이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3재(齋)’로 일컬어지는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겸재평’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즉 풍속화·인물화에 능통한 조영석은 겸재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만약 만리강산의 풍경을 한번에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一筆揮灑)로 그려낼 경우 필력의 웅혼함, 기세의 유동은 내(조영석)가 자네(정선)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네. 그러나 가느다란 털, 머리카락 한 올을 한치의 틈없이 정교하게 그리는 데는 자네가 나에게 조금은 양보해야 할 것일게.”(심재의 <송천필담>)

무슨 말인가. 겸재는 그야말로 일필휘쇄, 즉 한번에 쓸어내리듯 재빠른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조영석은 한마디로 “자네가 빨리 그리기는 하지만 정교한 면에서는 나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평한 것이다.

이런 평은 겸재(1676~1759)의 평생 절친인 이병연(1671~1751)의 평가에서도 볼 수 있다.

 

즉 1712년 겸재는 당시 강원도 김화(금화) 현감이던 이병연의 초대로 금강산을 유람한 뒤 <해악전신첩>을 제작했다. 이때 안개속 비로봉을 그리는 겸재의 모습을 본 이병연의 평가글이 남아있다.

“내 친구 정선은 주머니에 그림 그리는 붓이 없어/ 때때로 그림 그리는 흥취가 나면 내 손에서 붓을 빼앗아 갔네./ 금강산에 들어와 쓸어내리듯 휘두른 붓질이 더욱 방자해져서/ 백옥같은 만이천봉 하나하나 점찍어 그리고/ 놀랍도록 꿈틀거리는 구룡폭 어지러운 비바람 일어나게 그리네.”

 

■더욱 방자해진 붓놀림
이 대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더욱 방자해진 쓸어내리듯한 붓질’(揮灑太放恣)이라는 표현이다. 또 이병연의 이어지는 평은 겸재의 스타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선이 문득 한번 웃더니 먹만으로 젖은 듯 그려내니/ 전신이 더욱 기이하고 뛰어나 옅은 구름이 달을 가린 듯 하네./ 나를 보고 또 가지고 가라하니 관아의 창 가운데 놓아두었네.”

이병연의 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겸재가 한번 씩 웃더니 내(이병연) 손에서 붓을 빼앗아 일필휘쇄로 쓱쓱 비로봉을 그린 뒤 ‘자 이 그림을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단 이 그림 뿐이 아니다.

이른바 겸재의 ‘일필휘쇄’ 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목멱산’. 밀려드는 그림주문 탓에 형식적인 그림을 그려준 것 같다는 평이다.

 

조선 후기 문인 신돈복(1692~1779)의 야담집 <학산한언>에는 어떤 역관이 연행(燕行)을 떠나며 겸재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잠시 휘쇄법을 사용해서(暫加揮灑) 파도가 소용돌이 치는 바다 위에 떠있는 돛단배 그림 한 폭 그려주시면….”

또 조영석이 겸재에게 ‘절강추도도’를 부탁했는데, 그 또한 “순식간에 붓을 휘둘러 거친 파도가 이는 가을 강 풍경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조영석의 <관아재고>)

 

■밀려드는 그림 주문량
여기서 말하는 겸재의 ‘휘쇄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조선 후기의 문인 이규상(1727~1799)의 인물평에 그 단서가 나와있다.

“정선의 그림은 생동하여 원기가 있었다. 그러나 붓놀림은 거친 기운을 띄었다. 화폭 가득한 그림이라 할지라도 한 점의 붓 흔적과 먹 자국도 없었다. 일국의 그림 요구에 응하여 종이와 비단에 붓을 쓸어내리듯 휘둘러 그린 것이 얼마나 되는 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이규상의 <병세재언록>)

장진성 교수가 주목한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휘쇄법’은 겸재 정선의 일관된 그림 제작 기법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화폭에 그림을 그릴 때도 ‘한 점의 붓 흔적과 먹 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겸재 정선의 그림은 ‘원기(元氣)는 가득하지만 조악한 기운 또한 띤다’는 것이다. 이는 칭찬일 수도, 비판일 수도 있는 평이다.

또 하나 겸재에게는 늘 그림 주문이 쇄도했다. “제발 작품 하나 그려달라”는 폭발적인 요구에 겸재는 특유의 일필휘쇄법으로 썩썩 그려주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주문이) 삼대밭처럼 많았고, 겸재가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조영석)였다.

문제는 제 아무리 일필휘쇄의 겸재였다 해도 밀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겸재 정선의 득의작으로 꼽은 ‘인왕제색도’.  비 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렸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들이, 대필작가가 대신 그렸다?
조선 후기 문인 권섭(1671~1759)의 <옥소고>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어찌 이 노인(정선)이 피곤하여 아들이 대신 그리게 하였는가. 아니면 붓가는대로 쓸어내리듯 휘둘러 그릴 때 혹은 득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런 것인가.”

이 무슨 말인가. 권섭은 정선의 화첩을 본 뒤 “이 그림은 분명 정선이 아니라 그 아들이 대필한 것”이라 추정했다.

만약 정선의 그림이 맞다면 어떨까. 정선 특유의 휘쇄법에 따라 그린 그림 중에는 잘 그린 득의작도 있지만, 더러는 태작(태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권섭은 정선의 그림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하고 있다. 빨리는 그리지만 잘 그린 작품도 있고, 못 그린 작품도 있다는 식이다.

만약 밀려드는 주문에 부응하려고 대필을 시켰다면 누구에게 맡겼을까. 권섭의 언급대로 아들을 시켰거나 제자인 마성린(1727~1798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표암 강세황(1713~1791)도 약간은 비판적인 평을 내놓는다.

“정선은 마음대로 쓸어내리듯 휘둘러 붓을 사용했는데, 바위의 기세와 산봉우리의 형상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열마준법을 어지러이 써서 대상을 묘사했다.”

강세황은 정선이 금강산의 거대한 산세와 기암절봉의 형상이 일률적인 열마준(어지러이 죽죽 내리 그리는 기법)을 처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진경산수의 사실성이 완전히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선의 휘쇄법은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비록 대상을 정교하게 그리지는 못하지만 필력이 웅건하고 거대한 기세를 보여주는 신속한 필묵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려고 거칠고 빠른 붓질로 그린 기법 또한 휘쇄법을 뜻하기도 한다.

장진성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겸재 정선은 초기에 묘사에 충실한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신묘년풍악도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밀려드는 주문에 부응하려고 ‘휘쇄법’을 사용해 표현주의적인 화풍을 구사하게 됐다. 그러나 그후 주문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표현주의적 휘쇄법조차 점차 매너리즘화하여 결국 형식적인 필묵법으로 변하게 됐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해악전신첩> 중 ‘불정대’ 그림. 쓸어버리듯 휘둘러 빠르게 그리는 정선 휘쇄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열린 ‘겸재 그림’의 즉석 경매
그럴 이유가 있었다. 당대 정선의 그림 수요는 사실 엄청났다. 그림값도 대단했다.

신돈복(1692~1779)의 야담집인 <학산한언>을 보면 겸재의 그림이 중국에서도 불티나듯 팔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겸재의 절친인 이병연은 1500권에 달하는 중국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병연은 중국 연경의 그림가게에서 손바닥만한 겸재의 그림조차도 고가로 매매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연경에 사신으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겸재가 보내준 그림을 중개해서 생긴 돈으로 중국서적을 대량으로 사들였던 것이다.
<학산한언>은 겸재의 그림이 중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어느날 한 중인 집안에서 겸재에게 “그림 좀 하나 부탁한다”면서 비단치마를 가지고 왔다. 말하자면 그림 의뢰였다.

그러나 비단치마에는 얼룩이 묻어있었다. 겸재는 이 얼룩을 지우버리고는 비단치마 세 폭 중 한 폭에 ‘금강산전도’를, 다른 두 폭에는 ‘해금강도’를 그렸다.

 

주문한 그림을 받은 중인은 ‘금강산도’는 집안의 가보로 삼았고, ‘해금강도’ 한 폭은 중국 연경으로 떠나는 사신 편에 들려보냈다. 중인의 의뢰를 받은 사신단은 이 그림을 연경(북경)의 그림가게에 가져갔다. 그림가게에서 즉석 경매가 이뤄졌다. 경매가가 계속 치솟았다.

마침내 중국 사천성(四川省) 청성산에서 온 승려가 은 100냥을 불렀다. 그 승려는 그 정도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액수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남경에서 온 선비가 조용히 ‘120냥!’을 불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승려는 ‘130냥!’을 불러 그림을 손에 넣었다.

그런다음 그림을 불에 태워버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승려는 실제 그림값으로 50냥만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겸재 그림 1폭 가격은 청나라 궁정화가 1년 연봉
이 일화에서 보듯 겸재의 그림은 당대 중국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사천성 승려와 남경의 선비까지 매혹시켰음을 알 수 있다.

또 연경에서 겸재의 부채그림이 공양에 쓰는 향 50매 가격에 팔렸다. 때문에 연경을 드나드는 역관들은 겸재의 그림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리(신돈복) 동네에 사는 사람이 이병연에게서 ‘금강산화첩’을 사들일 때 엽전 30냥과, 좋은 말 한마리(40냥 가치) 등 총 70냥을 지불했다.”(<학산한언>)

종합해보면 겸재의 그림은 국내에서는 70냥, 중국에서는 은 130냥 가치로 매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돈은 과연 얼마의 가치였을까.

당시 청나라 초기 중국화가들의 그림값은 대개 6냥 이하였다. 또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6~1795) 시기 1급 궁정 화원의 월급이 11냥이었다. 그렇다면 겸재의 그림값(130냥)은 청나라 1급 궁정화원의 1년 연봉(132냥)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하경산수도’. 안정된 구도와 치밀한 구성, 웅장한 화면 등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 겸재의 작품이다.

 

■겸재의 득의작들
겸재는 밀려드는 그림 주문 때문에 평생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사대부 문인 및 관료들의 요청에 부응해야 했고, 연경을 오가는 역관 및 중인들을 통해 중국 판매용 그림을 그려줘야 했다. 어떤 경우엔 폭주하는 주문 수요를 맞추느라 특유의 일필휘쇄법으로 휙휙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아재 조영석의 품평이 흥미롭다.

“겸재는 ‘금강제화첩’을 그릴 때 싫증나면 마치 붓을 곱게 세워 쓸어버리듯 대충대충 그리는 필법을 사용했고, 그림 요청이 쇄도할 경우 적당적당 편의적으로 그렸다.”

물론 겸재의 이름에 걸맞은 득의작도 여러 편이었다. 예컨대 표암 강세황은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를 겸재의 득의작이라 극찬했다.

강세황은 “안개에 쌓여있는 아름답고 무성한 여름 산 경치가 일품”이라고 평가한 뒤 “정선 중년의 최고의 득의작이며 보배로 삼을만한 작품”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작품은 특유의 일필휘쇄법으로 쓱쓱 기른 작품이 아니다. 안정된 구도와 치밀한 구성, 웅장한 화면 등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입한 작품이다.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은 겸재를 둘러싼 평가가 너무 과장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인왕제색도’ 만큼은 득의작이라 꼽을 수 있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겸재의 본색이라 할 수 있는 창윤(蒼潤·푸르고 촉촉함)한 맛과 장건한 맛과 웅혼한 맛과 호한(浩汗·넓고 큼)한 맛과 임리(淋리·힘이 넘침)한 맛이 나타난 득의작이다. 내 소견으로는 아마 그 많은 유작이 이 한 작품을 위한 전주곡이었고, 또는 후렴곡이었던 것 같다.”(고유섭의 <조선미술사>)


<신묘년풍악도첩> 중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겸재의 진경산수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겸재가 조선 중화주의를 생각이나 했을까
금석 박준원(1739~1807)은 “조선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조선의 산천을 구경하고 나서야 겸재가 신품(神品)을 남겼음을 알게 된다”고 전했을 정도였다.  

또 ‘금강전도’의 제시를 보면 “굳이 금강산을 직접 답사하지 않고 배갯머리에 누워서 감상해도 좋을 정도로 금강산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도 있다.

밀려드는 주문에 더러 진부하고 형식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했어도 마음을 다잡게 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겸재는 80여 세가 되어도 여러 겹의 두터운 안경을 쓰고 촛불 아래에서 세밀한 그림을 그렸다. 터럭만큼도 실수가 없었다.”(박지원의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은 생의 황혼기에도 작품활동에 몰두하는 노화가의 모습을 생생한 필치로 전하고 있다.

흔히 어떤 인물을 평할 때 ‘추앙해야 할 위인’ ‘범접할 수 없는 성인’으로 규정해버린다면 그 인물은 신격화되고 만다. 겸재 정선이야말로 그렇다. 장진성 교수는 그것을 ‘애정의 오류’라 표현한다. 위인전식의 연구는 외려 겸재의 참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평생 그림에만 몰두했다는 겸재가 무슨 조선중화주의를 생각했겠습니까. 그럴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겸재는 죽기 전까지 매일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인기화가였으니까요”(장진성 교수)

 

필자가 보기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겸재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나 일필휘쇄로 붓을 휘둘렀던 겸재가 더욱 정겨운 모습인 것 같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12. 27. 19:04


<일전에 흐르는 물 회원님께서 이미 올려주신 신동권화백을 소개하는 중국의 월간잡지인 "China unicom" 표지와 54쪽 이미지입니다.
중국어(한자) 번역본이 입수되어 다시 소개해드립니다.>
한국미술계의 빅 리더
작가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확립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실재에서 그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소개할 두 사람은 한국의 순수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는고 리더로서 도전과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로서, 지금 만나보자.
태양의 작가 - 희망의 노래가 되다 신동권
생명의 에너지 '태양'. 특히 떠오르는 태양-일출은 탄생이며 희망의 메시지를 갖는다. 한국에는 이 떠오르는 태양-일출을 모티브로 40여년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태양의 작가가 있다.
화가, 신동권. 전업작가의 길을 고집스레 걷고 있는 그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시원한 낙원을 형상화함으로써 아직 도래하지 않은 앞날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총 2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아세아 현대미술전(1985, 일본 동경), 중국 건국 50주년 기념초대전(1999, 중국 CCTV미술관) 등 400여차례 국내외 초대전과 기획전을 가졌다. 2005년 유럽예술가도서관협회(ECAL)와 미국 뮤지엄 오브 아메리카가 뽑은 국제현대미술가 20인에 아시아 화가 중 유일하게 선정됨으로써 세계 무대에 소개되었으며, 근래에는 남미에서까지 그의 작품에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으며, 2012년 9월 현재 터키에서 작품전시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신동권 작가는 가장 근원적 존재로서 무한함을 상징하는 둥근 태양과 그 에너지를 받고 태어난 대지이자 인간을 뜻하는 나무와의 조화를 통해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의 분신이 된 붉은 태양은 70년대에는 하얀 바탕에 하얀 해로 서정적으로 표현되었다가,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커지고 붉은색의 강한 인상을 띄기 시작했고, 붉거나 때로 시리도록 푸르게 채색된 태양이 만들어졌다. 최근 작가의 나무는 일반적인 나무의 형상에서 추상화된 인간 군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작품은 한국의 많은 그림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작품을 판매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태양의 작가, 신동권이다. 그의 그림을 소유하거나 즐기는 이들은 그의 작품에서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희망은 비단 그림 속 태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녹록치 않은 전업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며, 한가지 모티브를 가지고 40여년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열정, 작업을 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 말하며 특벼한 일이 없는 한 365일 작업실을 지키는 고집스러움, 지치도록 무덥던 지난 여름도 작가는 작품과 재료로 빼곡한 작업실에 있었다. 이 같은 모습에서 그 희망과 위안은 배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재
한국미술지도자협회 회장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
전업미술교육협의회 감사
한국 정부종합청사 문화예술 자문위원
전시
1977~2012 개인전 29회
2005년 미국 Art Expo 초대 등 400여회 초대전, 국제전 참여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12. 11. 19:21

[프라임경제]거장 김환기화백의 초기작품이 온라인 미술품 경매에 올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미술품 판매사인 포털아트( www.porart.com )는 10일 오후부터 제2회 소장품 경매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2회 소장품 경매는 별도의 소장품경매 사이트( http://auction.porart.com )에서 온라인 경매로 진행하며, 근현대 미술품 102점이 출품되어 10일 오후4시부터 시작하여 오는 13일 오후4시부터 1분단위로 순차적으로 종료된다.

이번 온라인 소장품 경매에 출품된 김환기화백의 작품 “달과 항아리와 벚꽃”(50cm x 40cm)은 1956년작으로 김화백이 파리로 떠나기 전 성북동 시절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추정가 2억원 ~ 5억원에 경매에 올려져, 낙찰될 경우 온라인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로 기록될 전망이다.

포털아트의 이번 온라인 소장품 경매에는 이인성, 이마동, 황유엽, 홍종명화백 등 1세대 화가들의 서양화 작품과 이당 김은호, 의재 허백련,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남농 허건 등 작고한 화가들의 한국화 작품 등이 출품되었다.

특히 이번 경매에는 천경자 김기창 이대원 이만익 김종학 이숙자 이왈종 황영성 황규백 이목을작가 등 인기작가들의 다양한 판화작품이 출품되어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11. 5. 16:40

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반고흐미술관 관계자 등이'탕귀 영감'의 작품 상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 서순주 커미셔너, 나딘느 레니 로댕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르네 보텔 반고흐미술관 복원사, 루이 반 틸보흐 반고흐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왼쪽부터).


"현재 온도는 20도, 습도는 50%. 지금 바로 작품을 열어도 되겠어요. 오늘 23점을 벽에 걸 텐데, 여기 이 작품부터 꺼내보면 어떨까요?"


4일 오전 9시,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는 국내외 큐레이터와 복원사, 커미셔너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작품 개봉 순서를 논의하고 있었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II:반 고흐 in 파리'전 개막을 4일 앞두고 처음으로 포장이 풀리는 날이다. 이에 앞서 전시장에는 감시 카메라 35대가 추가 설치돼 50대의 카메라가 이미 24시간 삼엄한 경비에 돌입한 상태였다.


총 보험평가액 5,500억원에 달하는 이번 전시는 반 고흐 작품 세계의 예술적 토대가 마련된 파리시기(1886년 3월~1888년 2월)를 집중 조명했다. 작품들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파리 로댕미술관, 헤이그 시립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등 네덜란드와 프랑스 미술관 6곳에서 왔다.


이번 전시작품들과 함께 방한한 반 고흐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흐는 "파리시기는 반 고흐가 파리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전통회화에서 모던회화로 전환한 점에서 중요한 시기"라면서 "파리시기의 전후처럼 물감이 두껍지 않고, 짧고 강하면서도 얇은 붓질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번호가 호명되자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2, 3일 전에 도착해있던 작품이 한 점씩 옮겨졌다. 반 고흐 미술관 작품은 거북이 그림이 그려진 특수 제작 크레이트(미술품 전용 포장박스)에 담겨있었다. 비행기 운송 중 바다에 빠져도 작품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노란 철제 가방으로, 내부는 작품 크기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다중박스 구조다. 전시장과 똑같은 환경으로 항온, 항습, 조도 조절 기능까지 갖췄다.


전직 경찰관 출신의 반 고흐 미술관의 보안 책임자는 작품이 개봉될 때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촬영을 했다. 확대경을 쓴 복원사가 손전등으로 작품을 면밀히 검토한 후 포장 직전에 작성한 컨디션 리포트와 비교 후 OK사인을 하면 작품을 벽에 걸 수 있다.


맨 처음 개봉된 '잔이 있는 자화상'(1887)이 바닥에서부터 155cm 높이에 설치되자 모두의 얼굴에서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팽팽하던 긴장감도 한풀 꺾여 작품 설치 속도도 탄력을 받았다.


2시간쯤 지났을까. 이번 한국 전시의 포스터로 쓰인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포장이 벗겨지자 전시장에 흩어져있던 전문가들이 몰려들었다. 1978년, 한 관람객이 X자로 칼집을 냈던 비운의 작품이다. 곧바로 복원이 이뤄져 흔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귀 위쪽으로 희미한 칼 자국이 남아있었다.


곧바로 파리시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탕귀 영감'(1887)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의 최고 보험평가액 1,500억원이 책정된 작품이자 가로, 세로 92x75cm에 이르는 대작이다. 세잔, 고갱, 반 고흐 등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물감, 캔버스 등을 무상 제공하고 화구점에 전시도 열게 해준 성격 좋은 화구상이었던 탕귀.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3점 남겼는데, 로댕이 매입하여 현재 로댕미술관이 소유한 이 그림이 가장 빼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반 고흐 미술관의 복원사인 르네 보텔씨는 '탕귀 영감'을 확대경을 끼고 들여다보며 "반 고흐 작품 대부분 변색이 진행됐지만 이 작품은 초기 반 고흐가 사용했던 색채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놀라워했다.


로댕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나딘느 레니씨는 "그림 속 탕귀는 수도승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명상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배경에는 일본 판화가 그려졌고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리듬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로댕이 이 그림을 소장한 데는 작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탕귀, 반 고흐와 함께 일본 판화를 열성적으로 수집했던 로댕의 개인적 관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II:반 고흐 in 파리'전에 출품되는 60여 점의 유화는 오는 6일까지 순차적으로 설치돼 7일 오후 5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개막식에서 첫 선을 보인다. 지난 2007년 80만 관객 동원으로, 국내 미술전시 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남겼던 불멸의 반 고흐는 8일부터 내년 3월 24일까지 5년 전보다 더 짙은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9. 17. 16:54

美 여성 벼룩시장서 산 그림, 알고보니 10만弗 진품…42년간 행방불명된 리히텐슈타인 작품 창고서 발견…빛 못볼뻔 했던 명작들 뒷이야기 화제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듯 주위에 굴러다니는 그림이며 조각이 의외로 명작인 예가 가끔 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사는 20대 여성이 좋은 예다. 미국의 미술전문 매체 아트데일리는 11일 버지니아의 한 여성이 벼룩시장에서 7달러를 주고 산 그림이 7만~10만달러를 호가하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진품이었다고 보도했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에게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40만달러짜리 그림은 창고에서 42년 만에 발견됐으며, 그리스시대 조각상은 염소우리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명작이 뜻밖에 발견된 사례를 찾아가보자.

▶그림보다 고풍스런 액자가 맘에 들었는데…=이 여성은 이따금 벼룩시장을 찾곤 한다. 신원을 밝히길 거부하는 미국 버지니아의 20대 여성은 1년반 전 집 근처 벼룩시장에서 골동품 상자를 사들였다. 상자에는 플라스틱 인형과 낡은 그림 액자가 들어있었다.

벼룩시장 에서 미국 여성이 단돈 7달러(한화 8000원)에 구입한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시가는 10만달러를 호가한다.

 

이 여성은 상자 속에 담긴 인형에 끌려 그림들이 담긴 커다란 골동품 박스를 7달러에 샀다. 그림은 액자가 근사했다. 딸이 액자를 해체해 다른 용도로 쓰려 하자 엄마가 “아니다. 그림이 심삼찮다. 차분히 다시 보자”고 나섰다. 액자 하단에 Renoir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모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전문가를 찾았고, 포토맥 경매사는 감정을 거쳐 문제의 그림이 “르누아르의 것이 맞다”고 감정해줬다. 제작연대는 1879년으로 확인됐다. 르누아르가 파리의 센 강을 누비며 그렸던 강변 풍경작업 중의 하나인 것으로 밝혀졌다.

포토맥 경매사의 엘리자베스 와이즈번 대표는 “이 그림을 산 여성의 눈길을 끈 것은 진품 르누아르의 풍경화가 아니라, 플라스틱 폴 버니언 인형이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횡재를 한 주인공은 “나는 풍경보다 액자에 관심이 더 있었는데 엄마 때문에 명작을 건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7달러에 산 이 그림은 오는 29일 7만~10만달러의 추정가에 포토맥 가을 경매에 오른다.

▶50년간 창고에서 잠자던 피카소 그림=미국 인디애나 주의 한 소도시의 미술관 창고에서는 지난 8월 말 피카소의 진품 회화가 발견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인디애나 주 애반스빌 미술관에 지난 50년간 무명작가 작품으로 분류돼 창고에서 잠자던 그림이 최근 조사에서 피카소 진품으로 판명됐다.

미국의 한 가정집 창고에서 50년간 방치됐던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 상단에는 엄연히 ‘피카소’란 사인이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미술관 대장에는 ‘젬모’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소장품을 정리하던 중 피카소 그림일 수 있다고 판단돼 정밀감정을 거쳐 거장의 작품임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피카소의 사인과 함께 거친 선, 입체파적 형태가 진품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뒤늦게 ‘붉은 모자를 쓴 여인 좌상’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이 작품은 지난 1963년 한 디자이너가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기증 당시 제목이 ‘제모’였는데 이는 작가 이름이 아니라 스테인드 글라스기법인 제마이(Gemmail)의 복수형이다. 1950년대 피카소가 친구에게 이 기법을 전수받아 시험삼아 제작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던 것.

▶스코틀랜드 농촌 마을에서 발견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공개 작품=지난 8월 초에는 스코틀랜드의 한 농촌 마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발견돼 큰 화제를 모았다. 성모자상 형식의 이 그림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소유자가 소더비에 감정을 맡기면서 다빈치 작품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의 추정가를 약 1억파운드(약 1759억원)로 보며, 진품이라고 볼 수 있는 6가지 단서가 들어있다고 했다. 또 그림 뒷면에 교황의 교지가 있는 게 결정적이라고 했다. 이 교지는 17세기 교회를 통치했던 교황 바오로 5세가 주문한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 



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중 내금강을 그린 ‘풍악내산총람’. 겸재의 화첩은 자칫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했다.

소더비 스코틀랜드 경매의 해리 로버트슨 팀장은 “이 그림은 매클라렌 부인의 양아버지가 한 의사로부터 받아 수십년간 런던 자택의 침실에 걸어놓았다가 스코틀랜드로 이사해서 가져간 것”이라고 밝혔다.

▶42년간 행방불명됐던 리히텐슈타인 초기작 창고에서 발견=42년간 종적을 알 수 없었던 미국의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이 뉴욕 맨해튼의 한 창고에서 발견됐다. 뉴욕 포스트에 따르면 맨해튼 이스트사이드에서 발견된 작품은 유명 화상 레오 카스텔리(작고)가 생전에 작품의 수복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자취를 감췄던 리히텐슈타인의 ‘전기 코드(Electric Cord)’란 그림이다. 








이 작품은 최근 골드맨 화랑에서 40만달러에 거래가 이뤄질 뻔 했다. 카스텔리의 미망인인 바라라 여

사는 이 소식을 접한 뒤 리히텐슈타인재단에 연락하고, 법정공방이 마무리될 때까지 작품 반출을 금해줄 것을 요청했다. 레오 카스텔리는 1962년 리히텐슈타인의 첫 개인전을 열어주며 그를 세상에 소개한 딜러로, 문제의 작품은 그가 1960년대 작가에게 750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 카스텔리는 1970년 한 수복전문가에게 ‘작품의 때를 빼달라’고 의뢰했고, 며칠 뒤 전문가로부터 ‘도난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도난당했던 로댕의 흉상, 13년 만에 발견=근대 조각의 개척자인 오귀스트 로댕의 흉상이 도난당한 지 13년 만에 한 골동품상의 트럭에서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무게 8㎏, 높이 60㎝의 이 조각상은 로댕의 연인인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으로, 가격은 100만유로(약 14억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프랑스 경찰은 몽브리송에서 체포된 용의자로부터 로댕의 흉상과 함께 여러 미술품을 확보했다며 프랑스 문화재 밀거래 단속국이 조사 중이라고 했다. 









 ▶렘브란트의 드로잉, 뜻밖에도 가정집에서 발견=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네덜란드)의 드로잉이 스코틀랜드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년 그리고 개와 함께 있는 눈먼 거지’라는 타이틀의 이 드로잉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17세기 네덜란드 거장의 진품임이 확인됐다. 이 드로잉은 베를린주립미술관에 소장된 렘브란트의 ‘거지’와 매우 흡사해 ‘어쩌면 카피본일 수 있다’는 의혹이 발견 직후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 속 섬세한 인물 묘사 등이 진품으로 확인됐다. 가격은 약 8만파운드(약 1억4000만원)로 추산되고 있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9. 13. 11:34

박수근 ’나무와 세 여인’도 예상가 3배 넘겨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연 뉴욕 크리스티 아시안아트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다섯발톱 용문 청화백자(321만8천500달러(약36억3천700만원).



뉴욕 크리스티 경매가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연 아시안아트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들이 대거 출품돼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최고가를 기록한 다섯발톱 용문 청화백자는 321만8천500달러(약 36억3천700만원)에 팔렸다. 숙종 때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항아리의 당초 예상가는 200만 달러였다.

용의 발톱이 다섯개(五爪龍, 오조룡)로 그려진 이 청화백자는 60.5cm x 43cm의 대형 항아리다.

김혜겸 크리스티 한국미술 전문가는 “일본인 소장가가 내놓은 이 청화백자는 숙종 때 한 쌍이 화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크리스티에서 경매된 한국미술품 가운데 최고가는 지난 1996년 841만7천500달러에 팔린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다.

박수근의 ’나무와 세 여인’은 198만6천500달러(약 22억4천470만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경매 측은 당초 이 작품의 예상가를 60만~80만 달러로 잡았다. 예상가의 3배 가량에 팔린 것이다. 이 금액은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박수근의 작품 중 최고가다.

이번 작품은 세로(65.5cm) x 가로(50.5cm) 크기로 박수근 작품 가운데 매우 큰 편이다.

박수근 작품 가운데 이전 최고 기록은 2004년 123만9천500달러에 팔린 ’앉아있는 여인과 항아리’였다.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9. 10. 12:25

뭉크 ‘절규’ 1363억원 … 고흐·피카소 등 서구 근·현대 회화에 집중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미술품 경매 시장이 다시 활발해진다. 하지만 지난 5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5)가 세운 사상 최고가 기록이 깨지긴 어려울 듯하다. 1억2000만 달러(약 1363억원). 2년 만에 갈아치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지난 10년간 세계 미술시장에서 1억 달러를 훌쩍 넘기며 낙찰된 작품은 이로써 모두 네 점. ‘세기의 경매’를 이끈 초고가 작품 10개를 꼽아 소개한다.

초고가 미술품 경매는 그저 일부 부호들의 ‘놀이’가 아니다. 시장에서 공개로 하는 거래여서 신뢰할 만한 데이터로, 국제 경제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유일무이한 작품이자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명작의 ‘가격’과 ‘거래’를 엿보는 일은 애호가들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품 10선은 대부분 회화, 그것도 서구 근·현대 회화에 집중돼 있다.

5월 이전만 해도 10위권에 아시아 미술품도 포함돼 있었다.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5∼95) 때의 길경유여(吉慶有余) 무늬 도자기가 비싼 순서 열 번째로, 중국 미술 파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8일 마크 로드코(1903∼70)의 추상화가 8688만 달러(987억원)에 팔려 7위를 기록하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경매에 참여해 작품을 구입하려면 일정 연회비를 내고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현장 응찰외에 서면이나 전화로도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구입 후 작품가의 10% 정도는 경매회사에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아래의 작품가는 모두 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이다. 



1 절규 (에드바르 뭉크·1863∼1944)

경매일:2012년 5월 3일 (경매사:소더비 뉴욕)
1억1992만 달러(1363억원)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인 뭉크의 대표작이다. 오슬로의 피오르를 뒤로하고 한 사람이 뺨에 양손을 댄 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담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다. 뭉크는 네 점의 ‘절규’를 남겼다. 파스텔화와 유화 각 두 점씩이다. 경매된 작품은 1895년에 그린 파스텔화다. 나머지 세 점은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다. 그림을 내놓은 이는 노르웨이의 부동산·선박 사업가 페테르 올센이다. 뭉크의 이웃이자 후원자였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물려받았다. 페테르는 거실에 걸린 이 작품을 보며 성장했다고 한다.

‘절규’는 30대에 접어든 뭉크가 돈도 없고, 사랑도 잃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린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기 몇 년 전 독일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고, 뭉크는 니체의 저서 등에 관심이 많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프랑스 파리 강연에 참석하기도 했다. 생전 이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길 거부했던 뭉크는 “절규는 아주 인간적인 것이다. 내면의 슬픔 혹은 분노, 그리고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만 남겼다. 지난해 파리의 퐁피두센터 뭉크 회고전엔 48만6000여 관객이 몰렸고, 회고전은 지금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으로 옮겨 열리고 있다. 내년은 뭉크 탄생 150주년이다.

2 누드, 녹색잎과 반신상 (파블로 피카소·1881 ∼1973)

2010년 5월 4일 (크리스티 뉴욕)
1억650만 달러(1210억원)

파블로 피카소가 그의 정부(情婦)였던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1932년 그린 것. 가난에 허덕이던 젊은 시절 화상에게 싼값에 넘긴 작품이다. 이 그림은 2010년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1억650만 달러로 낙찰됐다. 이보다 석 달 전 거래된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Ⅰ’이 세운 세계 신기록은 물론, 6년 전 자신의 초기 작품 ‘파이프를 든 소년’(1905) 경매 기록도 넘어섰다. “나를 위해 축배를.” 이 현대미술의 제왕이 임종 때 남긴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열 점 중 석 점이 피카소의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최강자’란 피카소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분석회사 아트프라이스는 지난 한 해 동안 그림이 가장 많이 팔린 화가로 중국 서화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과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를 각각 1, 2위로 꼽았다. 피카소와 앤디 워홀은 3, 4위로 밀렸다. 13년간 1위였던 피카소의 아성을 중국 서화가 위협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피카소와 결별할 때가 됐다”는 게 아트프라이스의 분석이다.

3 걷는 사람Ⅰ(알베르토 자코메티·1901~66)

2010년 2월 3일 (소더비 런던)
1억430만 달러(1185억원)

4 파이프를 든 소년 (피카소)

2004년 5월 5일 (소더비 뉴욕)
1억417만 달러(1184억원)

5 도라 마르의 초상 (피카소)

2006년 5월 3일 (소더비 뉴욕)
9520만 달러(1082억원)

6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Ⅱ(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2006년 11월 2일 (크리스티 뉴욕)
8790만 달러(999억원)

7 오렌지, 레드, 옐로우 (마크 로드코·1903∼70)

2012년 5월 8일 (크리스티 뉴욕)
8688만 달러(987억원)

8 삼면화 (프란시스 베이컨·1909~92)

2008년 5월 14일 (소더비 뉴욕)
8628만 달러(981억원)

베이컨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 20세기의 끔찍스러운 공포를 잘 포착한 화가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16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인물 시리즈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독한 인간 내면을 형상화하며 20세기 최고의 구상 화가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가을 런던 테이트 브리튼을 시작으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순회 회고전이 열렸다. 전시회를 앞두고 작품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러시아 석유재벌이자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45)가 베이컨의 이 삼면화(Triptych·198×147.5㎝)를 사들였다. 미술 시장에서 형성된 추정가를 크게 웃도는 액수였다. 아브라모비치를 세계 미술계의 큰손으로 만든 것은 모델 출신 여자친구 다샤 주코바(29)다. 주코바는 모스크바에 아트센터를 열기도 했다.

9 가셰 박사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1853~90)

1990년 5월 15일 (크리스티 뉴욕)
8250만 달러(938억원)

반 고흐가 1890년 자신의 초기 후원자인 의사 가셰를 그린 작품. 작품성과 거기 담긴 스토리가 가치를 높였다. 1897년 처음으로 미술시장에 소개된 후, 거래될 때마다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기록적 사건은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일어났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치열한 경합 끝에 8250만 달러를 제시한 일본인 사이토 료에이에게 돌아갔다. 추정가보다 두 배 넘는 액수였다. 사람들은 이를 ‘세기의 경매’로 불렀다. 다이쇼와 제지 회장이었던 사이토는 같은 주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도 구매했고, 1년도 안 돼 거액의 탈세로 또 한번 화제에 올랐다. 그의 사후 두 작품은 다른 주인을 만났다.

10 수련 (클로드 모네·1840∼1926)

2008년 6월 24일 (크리스티 런던)
8038만 달러(914억원) 

Posted by 포털아트
스크랩/문화.예술2012. 8. 27. 17:39



경매사 K옥션(대표 이상규)의 가을 경매에 보물이 출품돼 고미술 경매가 최고기록 경신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옥션은 오는 9월 11일 오후 5시 강남구 신사동 K옥션 경매장에서 열리는 9월 가을경매에 국내 경매에서는 처음으로 국가 문화재 보물 제585호로 지정된 ’퇴우이선생진적첩’이 출품된다고 27일 밝혔다.

퇴우이선생진적첩(이하 진적첩)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 등을 곁들인 16면짜리 서화첩으로 경매 추정가는 27억-45억원이다.

현재 국내 경매 고미술 부문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3월 18억원에 낙찰된 ’백자청화운룡문호’가 갖고 있다.

진적첩에는 겸재가 1746년에 그린 것으로, 퇴계가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했던 도산서당의 모습을 표현한 ’계상정거도’가 실려 있다. ’계상정거도’는 지난 2007년부터 1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인쇄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경매에는 이 외에도 백자청화접시 10점(경매가 별도문의)과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높이 40㎝가 넘는 백자 달 항아리(경매가 별도문의) 등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 등 모두 164점(총 추정가 91억원)이 출품된다.

출품작은 오는 9월1일부터 10일까지 신사동 K옥션 전시장에서 전시된다.

Posted by 포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