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문화.예술2012. 11. 5. 16:40

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반고흐미술관 관계자 등이'탕귀 영감'의 작품 상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 서순주 커미셔너, 나딘느 레니 로댕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르네 보텔 반고흐미술관 복원사, 루이 반 틸보흐 반고흐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왼쪽부터).


"현재 온도는 20도, 습도는 50%. 지금 바로 작품을 열어도 되겠어요. 오늘 23점을 벽에 걸 텐데, 여기 이 작품부터 꺼내보면 어떨까요?"


4일 오전 9시,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는 국내외 큐레이터와 복원사, 커미셔너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작품 개봉 순서를 논의하고 있었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II:반 고흐 in 파리'전 개막을 4일 앞두고 처음으로 포장이 풀리는 날이다. 이에 앞서 전시장에는 감시 카메라 35대가 추가 설치돼 50대의 카메라가 이미 24시간 삼엄한 경비에 돌입한 상태였다.


총 보험평가액 5,500억원에 달하는 이번 전시는 반 고흐 작품 세계의 예술적 토대가 마련된 파리시기(1886년 3월~1888년 2월)를 집중 조명했다. 작품들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파리 로댕미술관, 헤이그 시립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등 네덜란드와 프랑스 미술관 6곳에서 왔다.


이번 전시작품들과 함께 방한한 반 고흐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흐는 "파리시기는 반 고흐가 파리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전통회화에서 모던회화로 전환한 점에서 중요한 시기"라면서 "파리시기의 전후처럼 물감이 두껍지 않고, 짧고 강하면서도 얇은 붓질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번호가 호명되자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2, 3일 전에 도착해있던 작품이 한 점씩 옮겨졌다. 반 고흐 미술관 작품은 거북이 그림이 그려진 특수 제작 크레이트(미술품 전용 포장박스)에 담겨있었다. 비행기 운송 중 바다에 빠져도 작품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노란 철제 가방으로, 내부는 작품 크기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다중박스 구조다. 전시장과 똑같은 환경으로 항온, 항습, 조도 조절 기능까지 갖췄다.


전직 경찰관 출신의 반 고흐 미술관의 보안 책임자는 작품이 개봉될 때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촬영을 했다. 확대경을 쓴 복원사가 손전등으로 작품을 면밀히 검토한 후 포장 직전에 작성한 컨디션 리포트와 비교 후 OK사인을 하면 작품을 벽에 걸 수 있다.


맨 처음 개봉된 '잔이 있는 자화상'(1887)이 바닥에서부터 155cm 높이에 설치되자 모두의 얼굴에서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팽팽하던 긴장감도 한풀 꺾여 작품 설치 속도도 탄력을 받았다.


2시간쯤 지났을까. 이번 한국 전시의 포스터로 쓰인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포장이 벗겨지자 전시장에 흩어져있던 전문가들이 몰려들었다. 1978년, 한 관람객이 X자로 칼집을 냈던 비운의 작품이다. 곧바로 복원이 이뤄져 흔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귀 위쪽으로 희미한 칼 자국이 남아있었다.


곧바로 파리시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탕귀 영감'(1887)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의 최고 보험평가액 1,500억원이 책정된 작품이자 가로, 세로 92x75cm에 이르는 대작이다. 세잔, 고갱, 반 고흐 등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물감, 캔버스 등을 무상 제공하고 화구점에 전시도 열게 해준 성격 좋은 화구상이었던 탕귀.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3점 남겼는데, 로댕이 매입하여 현재 로댕미술관이 소유한 이 그림이 가장 빼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반 고흐 미술관의 복원사인 르네 보텔씨는 '탕귀 영감'을 확대경을 끼고 들여다보며 "반 고흐 작품 대부분 변색이 진행됐지만 이 작품은 초기 반 고흐가 사용했던 색채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놀라워했다.


로댕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나딘느 레니씨는 "그림 속 탕귀는 수도승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명상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배경에는 일본 판화가 그려졌고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리듬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로댕이 이 그림을 소장한 데는 작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탕귀, 반 고흐와 함께 일본 판화를 열성적으로 수집했던 로댕의 개인적 관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II:반 고흐 in 파리'전에 출품되는 60여 점의 유화는 오는 6일까지 순차적으로 설치돼 7일 오후 5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개막식에서 첫 선을 보인다. 지난 2007년 80만 관객 동원으로, 국내 미술전시 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남겼던 불멸의 반 고흐는 8일부터 내년 3월 24일까지 5년 전보다 더 짙은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Posted by 포털아트